[백기자의 백가지 생각] 공급만이 능사는 아니다
백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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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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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동산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해 강남 재개발을 중심으로 상승하기 시작한 부동산값 상승은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을 넘어 서울 전역으로 확대되어 이제 서울에서 10억짜리 아파트는 서민들이 사는 아파트가 되었습니다.
정부도 이와 같은 상황은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토부 홈페이지에 가서 보도자료를 보면 절반 정도는 공공발주 확대, 규제 철폐, 재건축, 재정비 구역 지정과 같은 공급 우선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급이 늘면 가격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논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부동산은 다른 제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몇몇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부동산의 부증성입니다. 땅은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습니다. 즉,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공급이 불가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남에 살고 싶다고 강남땅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강남에 고층 아파트를 세운다고 해결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고층이 되면 건축비와 설계비 늘어날 뿐만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전용면적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층아파트보다 고층아파트가 더 비싸게 됩니다.
둘째, 부동산은 공급의 탄력성이 비탄력적입니다. 지금 당장 아파트를 철거하고 신축 아파트를 짓는다고 해도 최소 2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2년 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경기가 활황일지 불황일지, 인건비와 자재비는 얼마나 오를지 아무도 모릅니다. 부동산 경기가 활황이면 건설사는 돈방석에 앉겠지만 경기가 침체라면 회사의 존망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건설사가 발벗고 나서서 공급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셋째, 재개발, 재건축을 통해 신축 아파트의 수가 늘어난다고 하여 거기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최근 정부는 노후 빌라촌을 재정비하여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뉴빌리지’ 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노후 빌라촌에는 노인,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고 입주는 고사하고 공사기간 동안 머물 곳도 없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지역의 중산층 이상이 해당 지역으로 이주하는 상향여과 현상이 일어나고 기존 주민들은 더욱 낙후된 지역으로 쫓겨가게 됩니다. 이는 주거안정이라는 취지가 아닌 낙후지역마저 투기의 장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정부의 정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을 늘려 가격의 폭등을 막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며 선호지역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보다 많은 수요를 흡수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하지만, 부동산을 너무 시장중심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함몰되는 것은 선의의 피해자나 빈익빈 부익부등 부작용을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부동산은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대한민국 사람중에는 아파트 한 채에 인생을 갈아 넣고 평생을 원금과 이자에 허덕이다 생을 마감하거나 평생 죽어라 일해도 재산세도 한번 못 내는 사람도 많을 것 입니다. 그렇기에 부동산 정책은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시간에 쫓겨 땜질식 정책을 남발하는 것이 아닌 보다 장기적이고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정책이 언제쯤 나올까요? 제가 강남에 건물을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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