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처럼 되어선 안 된다."

워싱턴 외곽의 한 호텔에서 열린 비공개 협상 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이날 한국과 미국의 고위급 무역 실무진은 8월 1일 발효 예정인 상호관세 25% 부과 조치를 막기 위한 일곱 번째 협상을 마쳤다. 하지만 협상은 아직 ‘형식적 수준’에서 맴도는 분위기다.

정확히 열흘 전, 일본은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급한 관세 인상 조치는 눈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은 일본과의 협상에서도 자국 농업과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강한 조건을 내걸고 있다.

이제는 한국 차례다.
“이 협상의 성패가 곧 정권의 시험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기자회견 도중 “일본은 이미 통보된 관세율을 따르게 될 것”이라며 사실상 ‘합의 없는 관세 강행’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트럼프의 관세 전략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상대가 흔들릴 때 압박을 극대화하라"는 방식이다.
2020년 이후 이어진 미·중, 미·EU 간 갈등의 방식 그대로다.

한국 정부는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공동전선’ 전략을 꺼냈다. EU와 일본을 포함한 다자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에 대응하는 방식을 병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선거 패배로 발이 묶였고, EU는 자국 이슈로 분산돼 있다.

한국이 ‘혼자서도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 협상에서 단기 관세 유예보다 ‘포괄적 산업 협력 패키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른바 ‘3+1 협력안’이다.
미국이 원하는 ‘농축산물 시장 접근성 확대’ 대신, 한국의 반도체·배터리·에너지 기술력과 미국 내 투자 약속을 맞바꾸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이미 지난달 총 51조 원 규모의 미국 내 민간 투자안을 발표했고, SK·삼성·현대차 등 주요 그룹이 직접 대응 중이다.

한 산업부 관계자는 “단순한 유예 협상이 아니라 미국 내 산업을 돕는 파트너로 설득해야 한다”며 “그래야 정치적 설득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일본이 협상 테이블에서 흔들린 가장 큰 이유는 국내 반발이었다.
미국산 쌀 수입 확대에 대해 JA(농협중앙회)와 자민당 내 농림족 의원들이 집단 반대에 나서면서 정부는 손쓸 틈 없이 협상력을 잃었다.

한국도 비슷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관세 협상이 본격화되면 농업계·자동차 업계·철강 업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실제로 지난 5월부터 농민단체 연합, 중소철강협의회 등은 “대미 양보 일체 불가”를 선언하고 있다. 정부는 아직 이들 단체와 명확한 접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사전 보상안·산업전환 지원 패키지가 동시에 발표되지 않으면 여론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까지 대중 여론은 비교적 조용하다는 점이다.
강성 반미 구호나 반발 시위는 없다. 하지만 정부는 이 고요함이 불길하다고 본다.

“결과가 나왔을 때 실망이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3년 CPTPP 가입 논의 당시, 협상 후폭풍이 청문회와 장외투쟁으로 확산된 바 있다.

청와대는 이번 협상에 대해 “외교적, 산업적, 정치적 3중 관문”이라며 ‘전면전도 감수할 수 있는 대비책 마련’을 지시한 상태다. 산업부와 기획재정부는 이르면 26일, ‘한미 경제안보 대응 전략’ 브리핑을 예고하고 있다.

남은 시간은 열흘.
협상의 성패는 단순한 수출·관세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산업의 방향성과 국제 외교의 역량, 그리고 내각의 리더십까지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일본은 선거에서 졌고, 협상력도 잃었다.
한국은 아직 기회가 있다.
하지만 그 기회는 전략 없이 오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설득이 아니라, '결정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