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과학기술원(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정현호 교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송영민 교수 공동 연구팀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나노 광학 기술을 활용해 복제 불가능한 보안 인증 기술을 개발했다.
해당 기술은 ID 카드, QR 코드 등 다양한 실물 제품에 적용 가능하며, 육안으로는 기존 제품과 구별되지 않아 디자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위변조 방지 기능을 제공한다. 특히 고급 소비재, 의약품, 전자제품 등 정품 인증이 중요한 분야에 폭넓게 활용될 전망이다.
기존 위변조 방지 기술인 QR 코드나 바코드는 복제가 용이하고 제품별 고유 정보 부여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물리적 복제 불가 함수(PUF)' 기술이 주목받았다. 이는 제품 제조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무작위성을 이용해 각 제품에 고유한 물리적 특성을 부여하여 보안성과 인증 신뢰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기존 PUF 기술은 무작위성과 고유성은 확보했으나 표면 색상 조절이 어렵고 외부에서 쉽게 식별되어 보안에 취약하다는 단점을 지녔다.
연구팀은 자연계 생물에서 관찰되는 독특한 구조색 현상에 주목했다. 나비 날개, 새 깃털, 해조류 잎 등은 나노미터 크기의 미세 구조체들이 '준질서'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육안으로는 균일한 색상을 띠지만, 내부적으로 미세한 무작위성을 포함하여 위장, 의사소통, 포식자 회피 등 생존에 유리한 기능을 수행한다.
연구팀은 이 자연 원리를 모사하여 금속 거울 위에 유전체(HfO₂)를 얇게 증착한 후, 그 위에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금 나노입자를 정전기적 방식으로 자가조립시켜 준질서 구조의 플라즈모닉 메타표면을 제작했다. 이 구조는 육안으로 볼 때 일정한 반사색을 띠지만, 고배율 광학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영역마다 서로 다른 무작위 산란 패턴, 즉 '광학 지문'이 나타난다. 겉보기에는 동일하지만 내부 구조는 절대 복제할 수 없는 나노 구조 덕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고유 정보를 은닉하거나 선택적으로 노출할 수 있는 고차원 보안 인증 장치로 응용할 수 있다.
나노 구조체에서 생성되는 무작위 패턴을 활용하면 소자의 PUF 성능이 기존보다 향상되는 것을 확인했다. 구조체 자체는 수십 마이크로미터 크기지만, 정보를 담고 있는 패턴은 나노미터 수준이므로 전 세계 인구 수를 초과하는 방대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이 보안 시스템을 해킹하여 임의의 소자를 제작하고 복호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지구의 나이보다 길어 사실상 복제가 불가능하다.
연구팀은 개발한 보안 소자를 의약품, 반도체, QR 코드 등에 적용한 기술 시연을 통해 실제 산업적 활용 가능성을 입증했다. 500개 이상의 PUF 키를 생성해 분석한 결과, 비트 값 분포의 평균은 0.501로 이상적인 균형(0.5)에 가까웠고, 서로 다른 키 간 차이를 나타내는 해밍 거리 역시 평균 0.494로 측정되어 높은 고유성과 안정성을 보였다. 고온, 고습, 마찰 등 다양한 환경 변화에도 산란 패턴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내구성도 우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현호 교수는 “자연의 질서와 무질서가 공존하는 구조를 나노 기술로 재현하여 외형은 같아 보여도 본질적으로 복제할 수 없는 광학 정보를 구현했다”며, “이 기술은 고급 소비재부터 의약품 정품 인증, 국가 보안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력한 위조 방지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영민 교수는 “기존 보안 라벨은 미세한 손상에도 쉽게 변형될 수 있으나, 이번 기술은 구조적 안정성과 복제 불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했다”며, “특히 눈에 보이는 컬러 정보와 보이지 않는 고유 키 정보를 분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안 인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 우수신진연구사업, 연구개발특구 지역혁신 메가프로젝트, 광주과학기술원 GIST-MIT AI국제협력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2025년 7월 8일 온라인으로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