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EV) 시장의 성장 둔화 국면 속, 이차전지 전해액 전문 기업 엔켐이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심의 신산업으로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EV 매출 의존도를 낮추고 ESS를 미래 핵심 동력으로 전환하는 전략이 본격화된 것이다.

글로벌 EV 수요는 보조금 축소, 고금리, 완성차 업체의 투자 조정 등 복합 요인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 배터리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엔켐은 포트폴리오 확장, 지정학적 리스크 분산, 기술경쟁력 강화 세 축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ESS 시장의 성장이다. 엔켐 중국 법인의 ESS용 전해액 공급 비중은 3분기 누적 기준 약 70%에 달한다. 이는 EV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확보하는 흐름이 명확함을 보여준다. 미국 ESS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엔켐은 올해 상반기 미국향 ESS 전해액 공급을 시작했으며, 2025년 ESS 매출 비중을 10%, 2027년에는 20%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ESS는 전력망 안정화 수요 증가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맞물려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다.

기술 경쟁력 역시 ESS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ESS는 장수명 및 고안정성이 핵심이며, 엔켐은 고내열 전해액 제조 기술, 장수명 첨가제 기술 등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드론 분야에서는 고출력·고효율 전해액 개발을 위해 유럽 배터리 제조사와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한, 국내 방위산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잠수함용 전해액 개발도 병행하며 특수용도 전해액 분야로 기술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 분산을 위한 글로벌 전략도 가속화하고 있다. 엔켐은 인도 및 동남아를 차세대 핵심 시장으로 판단하고 공급망 구축에 착수했다. 이 지역은 EV·ES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며 전해액 수요가 본격화되는 단계다. 유럽에서는 현지 조달 강화 정책에 대응하고자 폴란드·헝가리 공장을 기반으로 생산부터 품질 관리까지 가능한 '완결형 제조·품질 체계'를 앞세워 신규 고객사 및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있다. 북미 역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이후 현지 조달 비중이 높아지며, 엔켐의 북미 생산 및 공급 역량이 더욱 강화되는 추세이다.

엔켐은 기술을 핵심 무기로 삼아 제품 경쟁력의 균형적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고안정성 전해액 소재 기술, 장수명 첨가제 개발 능력, 전고체·반고체용 차세대 전해질 연구, 글로벌 통합 품질관리 체계를 기반으로 시장 변동성에 흔들리지 않는 기술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엔켐 관계자는 “EV 시장이 단기적으로 조정을 겪고 있으나 전동화 흐름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며 “ESS·드론 등 신산업 고객 확대와 신흥 시장 및 글로벌 신규 고객 확보를 통해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