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산업이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메모리 중심에서 시스템 반도체·후공정·AI 반도체 등으로 시장 지형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한국의 기술·정책 전략도 총체적 업그레이드가 요구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글로벌 메모리 시장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지만,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시스템 반도체 설계 ▲첨단 패키징 ▲지능형 반도체 ▲공급망 다변화 등의 약점이 한계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중국·유럽 등 주요국은 반도체를 ‘안보 산업’으로 규정하며 공격적인 육성책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은 ‘CHIPS법’으로 팹리스부터 파운드리까지 자국 내 생산거점을 집중 유치하고 있고, 중국은 정부 주도 반도체펀드로 자급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여전히 메모리 의존도가 70%를 넘는다. 전문가들은 “AI 반도체, 차량용 반도체, 통신칩 등 고부가가치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도 기술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TSMC, 인텔 등은 3D 적층 패키징과 고대역폭 메모리(HBM) 기술을 중심으로 후공정 경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반도체 성능 한계가 설계와 공정만으로는 극복 어려워지면서, 전력효율·집적도를 좌우하는 첨단 패키징 기술이 차세대 경쟁력으로 떠오른 것이다.
삼성전자도 ‘팬아웃 패키지’, SK하이닉스는 HBM4 개발을 통해 후공정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전문 중소기업 생태계와 소재기술 국산화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생성형 AI, 엣지컴퓨팅, 양자 컴퓨팅 등 신산업을 겨냥한 반도체 개발도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AI 반도체는 GPU 중심의 기존 구도에서 뉴로모픽, NPU, 옵티컬 컴퓨팅 등으로 다변화되는 추세다.
정부는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개발 전략’에 따라 2030년까지 AI 반도체 시장 점유율 10% 확보를 목표로 설정했지만,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 격차 및 수요기반 부족이 한계로 지적된다.
민·관 연계 강화가 핵심…“반도체 전략, 2단계 진화 필요”
산업계는 반도체 특별법 제정과 함께, 민관 공동 R&D·인재 양성 플랫폼이 본격 가동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수도권 집중 해소, 소재·부품 장비 클러스터 다변화, 전력·용수 인프라 선제 확충 등 거버넌스 재정비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기술 선도국으로의 도약은 단순한 생산능력 확장을 넘어, 생태계 전반의 구조 개편 없이는 어렵다”며 “차세대 반도체 R&D에 대한 지속적 투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