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오는 8월부터 구리 수입에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장비, 전력 인프라 등 구리 수요가 높은 업종 전반에 생산 원가 상승과 수출 타격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미국 내 대규모 공장을 운영 중인 국내 배터리 업계는 이번 조치로 인해 직접적인 원가 부담과 더불어 중장기적인 공급망 재편에 직면하게 됐다.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은 미국 현지 공장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지만, 핵심 소재인 구리 가격 상승과 수급 불안정성은 프로젝트 전체의 수익성과 안정성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배터리뿐만 아니라 전선·전력장비 등 전통 제조업체들도 관세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태한전선, 대창, 풍산 등 구리 기반 산업체들은 단기적으로 주가가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출 경로 변화와 대체 원자재 확보 등의 과제가 부각되고 있다. 국내 구리 가공업체들은 그동안 미국 시장을 주요 판로로 삼아왔으나, 관세 부과 이후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부도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국제무역협회(KITA)는 미국 상무부에 한국산 구리 제품에 대한 관세 면제를 공식 요청한 상태다. 특히 한국산 구리는 미국 수입 비중의 3.5%에 불과하고, 군사 목적과는 거리가 먼 인프라 및 산업용 용도라는 점을 강조하며, '국가 안보'라는 명분에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반면, 이번 조치를 산업 구조 고도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구리 정제 및 가공 기술의 국산화, 원재료 공급망의 다변화, 신소재 대체 기술 개발 등은 구리 의존도를 줄이고 미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중소 가공업체들 사이에서는 동남아시아와 유럽 시장 확대, 내수 기반 강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는 움직임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거시경제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한국 수출이 4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가운데, 구리 관련 품목 수출 둔화가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와 부동산 리스크 외에도 대외 무역 불확실성을 금리 결정의 핵심 변수로 고려하고 있으며, 하반기 금리 인하 여부도 이번 관세 이슈와 맞물려 복잡한 셈법을 요구받고 있다.
산업계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관세 적용 유예나 예외를 확보하는 것이 단기 최우선 과제라고 보고 있다. 동시에 이를 계기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첨단 소재 산업 육성을 통한 근본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발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한국 산업계는 예측 불가능한 외부 변수 속에서도 유연한 전략과 장기적 비전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구리 관세’는 단순한 무역 장벽이 아닌, 한국 제조 산업 전반의 경쟁력과 대응력을 시험하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