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와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상승세를 이어가려던 한국 조선업계가 노조 파업이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노사 간 임금 인상, 정년 연장 등 핵심 쟁점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갈등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중국 조선업계는 올 상반기 신규 수주 점유율에서 세계 1위를 수성하며 굳건한 입지를 보였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연속 파업에 돌입했으며, HD현대 조선 3사 노조 지회장은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2차례에 걸친 본교섭에도 불구하고 노사는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기본급 14만 1300원 인상, 성과급 산출 기준 변경,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12만 7000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과 격려금 500만원 지급 등의 안을 제시한 바 있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등 다른 조선사들도 파업 수순을 밟고 있으며, 조선업종노조연대(조선노연)는 17일까지 유의미한 제시안이 없을 경우 18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조선업계는 노조의 본격적인 파업이 생산 차질로 이어져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실적을 수익으로 전환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및 신조 건조 협력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함정 MRO 사업과 신조 건조는 기술력과 납기 등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되기에, 반복되는 파업으로 국내 조선사에 대한 신뢰가 하락할 경우 미국과의 방산 협력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중국 조선업계는 올 상반기 신규 선박 수주 점유율 68.3%를 기록하며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포인트 하락한 수치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점유율이다. 신규 수주 물량은 4422만 DWT로 전년 대비 18.2% 감소했으며, 선박 완공량은 2413만 DWT로 3.5% 줄어들었다. 6월 말 기준 선박 수주 잔량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36.7% 증가한 2억 3454만 DWT를 기록했다. 한국은 신규 수주 물량 및 완공량 비중에서 각각 21.9%, 26.5%로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0월부터 중국산 선박에 항만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것이 중국 조선업황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비용 효율성, 탄력적인 공급망, 생산 능력 면에서 중국 조선업의 경쟁 우위는 여전하며, 미국의 항만 수수료 부과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시장점유율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가 중국선박집단공사(CSSC)와 중국선박공업집단공사(CSIC)의 합병을 승인한 것도 중국 조선업계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병으로 세계 최대 조선 대기업이 탄생하며 규모의 경쟁에서 우위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다.
한국 조선업계 관계자는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를 통해 수익성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에서 노조의 파업은 우려스러운 지점"이라며 "다양한 국가의 선주들이 상주하고 있는데 반복되는 파업으로 인해 신뢰가 하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약진과 미국의 견제가 맞물리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한국 조선업계는 내부 노사 갈등이라는 큰 숙제를 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