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면서 국내외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유례없는 더위로 에어컨 가동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전력 수요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전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정부와 산업계가 전력 위기 대응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이달 들어 전국 평균기온이 35℃에 육박한 가운데, 일일 최대 전력수요는 95.7GW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서울·경기·대구 등 폭염 특보가 발효된 지역을 중심으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전력 예비율은 한때 7%대로 떨어졌다. 전력 수요가 공급 한계치에 근접하면서 산업체에는 수요 감축 권고가 내려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전압 저하 현상도 관측됐다.

이 같은 전력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 동부 지역은 40도를 넘는 폭염 속에 학생들이 도서관과 지하철 등 공공시설로 피신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로 인해 중국 전력망에는 1억4700만kW가 넘는 전력 수요가 몰렸으며, 일부 지역은 사전 경보 없이 제한 송전을 시행했다. 유럽과 미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미국 전력당국은 “이번 여름 전력 수요가 1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일부 주에서는 이미 변압기 고장으로 인한 국지 정전이 발생한 바 있다.

폭염에 따른 전력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는 냉방기기 사용 증가, 발전 설비의 고온 효율 저하, 송전 인프라 과부하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여름철 고온 다습한 날씨는 발전소의 냉각 효율을 떨어뜨려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여기에 전기차 충전, 데이터센터 운영 등 전력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는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여름철 전력 수급 대책을 가동하고, 필요 시 민간 발전 예비자원을 긴급 투입할 계획이다. 또 주택용 전기요금의 누진제를 완화해 국민 부담을 낮추고, 전력 피크 시간대를 조정할 수 있는 스마트 수요관리 프로그램을 본격화하고 있다. 에너지공단은 에너지다소비사업장을 대상으로 전력피크 시간대 사용량 절감을 유도하는 'DR(수요 반응)'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 중이다.

산업계도 긴장 속에 대응에 나섰다. 제조업체들은 피크타임 공정 가동을 자제하거나 심야 시간으로 생산 스케줄을 조정하고 있으며, 일부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은 공조설비 가동률을 조절해 전력 소비량을 분산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전력 위기를 단기적 위기가 아닌 ‘기후 위기 시대의 구조적 도전’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향후 반복될 수 있는 전력 피크 상황에 대비해, 에너지 저장장치(ESS), 분산형 전원, 스마트그리드 등 차세대 전력 기술과 인프라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요구된다. 동시에 기업과 국민이 일상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피크 시간대 사용을 줄이는 수요 분산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